Sunday, January 11, 2015

완벽한 그

꿈에서나 보았을까...
아니다
꿈에서도 본적이 없다.
내 주제를 알고 살자라는 나의 신념에 감히 그런 형상을 그려본적도 없는...

몇 종교에도 그렇지 않은가, 시각적으로 어떤 이미지로도 형상화를 금지하는...
나의 이상형의 남자는 그러하였다. 얼굴이 없는, 그러나 느낌은 충만한.

그래도 '기왕이면' 하는 리스트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어깨가 넓고, '기왕이면' 키도 나보다 크고, '기왕이면'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것들...
내면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겉에서 보여지는 일명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고 싶진 않았다.
그런면에서 몇번은 만나봐야 알수 있는 그 내면성은  어찌보면
빨리 쉽게 찾을수 있는 조건좋은 남자에 비해  난 눈이 무척 높은 것일 수 있다.

4년,
한국에 들어온지..
힘들고 지치고 외로운.. 적응을 하고 있나 하는 질문 조차 할수 없던 매정히도 빠른 세월들.
그리고 아직도 대답할수 없는 질문:

 "나, 적응... 잘 하고 있는거지?"

그동안 한국에서 남자와의 인연에 별다른 노력을 안하고 살았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사랑은 감정적 사치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와 가치관, 인생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내가 '기왕이면'하고 바랬던 모.든.걸. 충족하는 남자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인정을 받는 것 같았고, 자신감도 넘치는 흠잡을 곳이 없는 남자였다.
누구라도 탐낼 그런 남자.


내가 못하는 특성을 그는 직업으로 삼고 있었고, 그가 잘하지 못하는건 내겐 직업이었다.  또한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알았으며, 예술을 이해 하였으며, 식습관 까지도 비슷했다.


그는 이보다 더 할수 없는 나에게 완.벽.한. 남자였다.

얼굴없던 나의 이상형에 그는 그렇게 갑자기 내인생에 들어와 퍼즐처럼 완벽하게 맞추어 주었다.

 우린 아주 비슷했으며 아주 반대의 매력에 끌렸다.



그러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난 강가의 둥근 넙적한 돌이었고,
대리석의 반짝이는 예쁜 돌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가시돋은 돌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난 그의 가시에 찔렸고,  언젠가는 스스로가 만들어지는, 이미 내 모습을 사랑하는 자신의 돌의 모습이 아닌, 그의 가시로 찔리고 파여 그가 만들어놓은 돌의 모습이 될것 같았다.


그가 그의 가시로 나를 타지마할을 조각해 낸다한들,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이면 다 소용없는일 아닌가?

겁이 났다.

그의 사랑에도 의심을 하였고, 불안정이 내 숨을 조여 왔다.

몇년전 미국에서 유행하던 말, "He's just not that into you" 라는 말이 조롱하듯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문화적 다름... 이건 인정하기 싫지만 보고 겪고 말았다.

그를 통해 보게된 나는 미국적이였고, 그는 한국식 경쟁의 핏싸움에 얼룩진 남자였다.


그를 통해 본 나의 자존감.
또다른 방향과 방식으로 나를 배운다.

그 상처... 그건 내가 덮어주기엔 너무 큰 일이겠지?



불안은 독이다.
독에 취해 난 그렇게 그를 보내 버렸다.

untitled

Untitled.

굳이 좋던 나쁘던 지금의 감정에 타이틀을 혹은 어떤 형용사를 달고 싶지 않은..그런 날이다.

Friday, January 9, 2015

캐나다 그 아득한 과거

캐나다라는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그저 아득한 과거속의 나라같다.

저녁 파티에서 내가 살던 오크빌과 내 학교를 알며 내 홈스테이 가족중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다니고, 그곳을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졸업해서 떠나자 마자 그 동내와 인연이 닿았다고 했다.
우린 한참 10년도 더 지난 서로의 캐나다 이야기를 했다.


묘하다...

난 그 좋은것만 생각하면 무한히 좋고, 싫은것만 생각하면 무한히 싫었던 그곳의 기억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캐나라라는 기억의 서랍장엔 전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폴더들이 너저분이 섞여 있다.

거기서 완벽한 폴더는 아마 토론토에서 만든것 이였을것 같다.

아쉽게도 그 폴더는 꺼내볼 일이 거의 없다. 그냥 완벽히 그곳에서 언젠가 꺼내어질때를 기다리며 앞으로도 꽤나 먼지가 쌓이겠지.

이상하다 기억과 감정이란게 정리 되지 않은 서랍장을 열 기회가 더 많다는건.



Wednesday, April 13, 2011

우리말의 제 발견 - <쪼다>

10년간 외지 생활을 하면서 가끔 왜 이 이 단어가 이렇게 불리울까 하고,
태어나서 부터 써온 단어들에 의아해 한적이 좀 있다.

10년간 못되먹은 영어 욕은 있는것 다 배우고 왔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이 엄청난 욕이 상기 된 배경이 있지만, 그건 뒤로 하고,
이 아주 감칠맛 나면서 약간은 귀여운 맛이 있는  욕, <쪼다> 를 언급하고자 한다.

욕은 주로 우리에게 강도의 세기로 단위화 되어 사용된다.
그의 문화적 배경이나 음율의 느낌, 상황/상태의 적절성등은 많이 고려치 않고 사용한다.

우선 <쪼다> 라고 말해보자....
자신도 모르게 사랑스럽게 나오지 않는가?!
물론 당신은 비열하게 말을 했을수도 있다.
예를 들면 뭐, 쪼!다~! 이렇게... 그건 내가 전 긍정의 의미로 내비친것의 반항이거나 당신의 사회적 심리성을 의심해 볼것으로 여기겠다.

난 이 단어가 '사람이 무엇엔가 기가 죽어 쉽게 쫄다' 하는 의미의 욕으로 누군가 제 기를 다 펼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쓰는 말로, '바보'의 다른 말이라고 해석 했다.
그런데 여기서 '기가 쫄다'는 표준어처럼 쓸수 있나? 사투리 인가 욕인가??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뒤져보니,
쪼다 [명사]

‘덜떨어져서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을 낮추보아 이르는


이라고 되어 있다. 더 영어로 내가 silly 라고 해석을 했더라면 여기서는 retarded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조금 강도 높은 욕처럼 들린다!
더 쇼크한 것은 다음이다.  이 말의 배경인데, 이것이 왕! 의 이름.... 이 아니라 왕이 될뻔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
네이버인 들이 말하길...

"유래는 옛날에 '조다'라는 왕조가 있었는데



성함락 등등 아주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왕에 못오르고 죽어버려서
쪼다~쪼다 라고 부릅니다"

 그사람 이런 빛나는 단어의 영구적 업적론은 누가 감히 언급할것인가.
성함락 등등은 관심 없다. 그는 우리에게 이 <쪼다>라는 단어를 주고 이세상을 떠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증명 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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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pril 11, 2011

가깝지만 먼 존재들

우리 삶엔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존재들이 있다.


가까이 있는 일본, 혹은 동남아 나라들도 지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그들의 문화나 사회적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거리감이 있다.



사람사이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지만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에 따라 우린 멀리 느끼기도 하고 가깝게 느끼기도 한다.



멀리에서 사는 남자들만 만난 나는 반대로 그들이 가깝게 느껴진 한 예다.

늘 서로 생각하고, 늘 전화/통신에 의존한 교류 만으로도 존재적 가치와 부피는 누구와도 견줄수 없이 커 멀리 사는 그들이 멀지 않게 느껴 졌었다.



주로... 이건 초반에 더욱 해당하는 말이 겠고...

그런 교류가 쌓인다는 것은 애정도 같이 쌓아 진다는 뜻이다. 애정이 쌓아 질수록

상대방에 기대하는 바들이 커지거나 방향을 달리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엔 언젠가 트러블이 생긴다.



트러블이 쌓이고 쌓여 지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것도 물론... 늘 애정을 나누던 전화상으로...



사랑은 결국 '지침' exhaustion 에 지는 것인가? 그 지침 안에서도 난 아직 애정이 있다고 믿는다.

지침에 의한 헤어짐은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힘든 무게를 내려 놓는 거.

그렇게 나온 헤어짐은 서로를 오랫동안 힘들게 한다.



그 지침은 강한 애정에서 온다.

먼거리에서 하는 연예야, 늘 혼자 하던거 하고 내 삶을 살고 있다가 가끔 만나면 사랑의 추억을 만들고, 또 다시 만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싱글 이었을때나, 멀리 사는 님들과 관계를 이어가도 내 궁극적 삶의 모습은 많이 변하지 않는다.

전화만 많이 할뿐...

만약 적당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나는 관계 였다면, 없는 것보다야 전화상의 관계에 만족을 했을터이고, 어쩌다 만나는것에도 만족을 했을터이다. 내 일상의 삶엔 큰 변화가 오지 않으니 말이다. 문제는 자꾸 쌓여가는, 만들어지는 애정의 크기에서 드리워지는 야속함이다.



더 가까이 두고 싶고, 더 자주 보고 싶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연예만으로 20대를 다 보냈다.

익숙해 져야 하는 걸까?  인생의 숙명인가?

남들이 말하는 현실적 사랑은 무엇인가?



순간 지쳐 있는 스스로를 보고 왠지 안타깝다.

이 나이에 정상적인, 남들같은 연예는 어떻게 하는지 감 도 오지 않는다.




나의 이기심과 욕심들로 그들을 멀리 보내야 했다.





그들은 멀리 있다.

그러나 같이 해온 추억들로도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Tuesday, June 8, 2010

Ending of my 유학 life

2010 년.


10년 간의 나의 긴 유학 생활은 드디어 끝이 났다.

지금은 나의 고향에서 현실을 적응하는 중이지만



아무튼 이곳을 빌미로 난 이 썩은 기억력으로 기억나는 순간 순간 이곳에 내 추억들을 담기로 했다. 막상 쓰러 오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당혹 스럽다.. 물론 이런저런 많은 일들이 지나갔지만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말하지 않았는가, 이 썩은 기억력... 저주한다!



한국에서 사회생활 한 지도 벌써 한달!!!



난 또다른 나의 모습에 놀랐다.

한국에 와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또다른 컬쳐샥(Culture shock)* 을 은근 많이 받고 있었다.

한국인이 한국 문화에 놀라는 기분은 좀.. 이상하다.



*새로운 문화에 놀라는 것





우선 모두들 열~심히 사는것에 감동이다.

앞으로 종종 한국에서의 그 컬쳐샥에 대해서도 쓸 계획이다.

옛날 지난 캐나다 일부터 쓰고 싶었지만 이 썩은 브래인, 에디팅 잘된 영화처럼 스토리 전개 못하겠다.

내 브래인은 대충 찍어놓은, 은근 예술성 돋보이는 폴라로이드 snap shot사진들을 마구 마구 섞어 놓은것 같이 기억들을 저장해 놓는다.

내 친한 친구 S 씨는 언제 무엇을 무엇에 관한 대화 내용을 옛 영화를 꺼내 보듯 서론 본론 결론 까지 술술 늘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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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인지 난 '레디오 해드' 의 '스케터브래인' 을 좋아한다....

Radiohead - Scatterbrain

Thursday, March 11, 2010

"나의 의견" 이란 무엇인가...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언어며, 문화며, 여러가지 적응 하기 힘들고 시간이 걸렸지만,
그중 정말 늘 날 혼란시키고, 날 시험에 들게한 것은 의외로 하나의 문제(a question) 였다.
What is my opinion?
말 그대로 내 의견은 무엇인가에 대한 글을 쓰거나 질문을 할때였다.

난 한국에서 늘 중립의 미를 믿어왔었다. 싫지도 좋지도, 맞다 아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가 아닌 그럴수도 이럴수도 있는 것, 흑백 논리 보다도 회색논리를 지지 했다.  그렇게 argue 해봤자 삶을 짧다는 얼토 당토 한 철없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건 나로 하여금 나의 존재를 작게 만드는 결과에 불과 했고, 세상은 중립적인 아이디어를 갖은 사람에 의해 돌아가는게 아니라, 한 주장을 갖고 믿음에 의해 돌아간다는 사실을 난 힘들게 배웠다.

에세이 숙제를 할때마다, 늘 인자하신 우리 선생님들 께서, "여기에 너의 주장이 들어가지 않았구나. 다시 해와라" 며 친절한 빠꾸를 주신 덕에 난 내 주장, 아이디어에 생각을 하기 시작 했고, 발전할수 있었다.

그리고 곧, 내가 그것에 잘 한다는 사실도 배웠다.
주장 만들고, 의견 내세우기....
한국 정서에 심하게 반항적인 느낌이 오지만,  나에겐 유학생활의 '살아남는 방법' 이 돼었고, 나를 더 잘 알게 된 계기가 됐다.

사회에서도, 내 의견 즉, YES or NO 를 쉽게 이야기 하지 못하거나,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서 손해를 볼일이 참 많다.

작은 예를 들면, 파티에서,

"어머 넌 누구니?"
   "어.... 난 누구랑 같이 따라왔어..." (나)
"그래? 반가워. 뭐 마실거 줄까?"
   "아... 아니야, 괜찮아..."

순간 머리속엔 내가 마실것을 원하냐 안원하냐는 생각치 못한다.
버릇처럼 나온 나의 한국인의 "한번은 거절" 예절에 벌써 "노" 라는 대답을 듣고 등 돌린 파티녀가 보인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난 음료를 원하는가 원하지 않는가....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마시고... 라는 답이 마음에서 왔지만,

짧은 영어로 사람들과 잘 끼지도 못하던 나는 그냥 쭈삣한게 싫어 음료라도 들고 있기로 결심한다.  그리곤 주방으로 가서, 한국인 정서로 또 그냥 어정쩡 (akward) 하게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누군가는 한명이 센스있게 물어봐 준다. "뭐 줄까? 뭐 마실레?"

그럼 난 순간 무슨 음료를 내가 원하는지 생각을 미쳐 못했음을 깨닫는다.

"어...음... 나 너랑 같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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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싫지 않은가... 나 자신을 모른다는거...
나의 의견이/주장이 곧지 않다는거...
정말 unattractive 매력 없음에 극치 이다....

몇년이 지난후 더이상 나의 그런 옛 모습이 없다는것에 난 흠칫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