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13, 2015
불안한 30대
모두가 그랬듯이 우리 부모님도 풍족치 못한 시절에 자라서 자식만큼은 편히 자라게 해주고 싶었으리라...
열심히 살아주신 아버지 덕에 필요한것은 다 갖추고 살았고, 때와 시기가 맞아 유학도 다녀올수 있었다.
물론 절약은 한다고 하며 살았지만 그때는 내가 얼마나 소비하는지에 대한 개념도 신경쓰지 않고 살았었다. 그저 심하게 불편하지 않은 그런 렌트방에서 필요한 재료들과 책은 부족하지 않게 사는 정도 였다.
재정이 좋아 지지 않으면서 조급한 부모님은 내가 바로 대학원을 가길 원하셨고, 미대생으로서 이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겪어본 사람만이 알것이다.
그렇게 많이 부족한 나는 대학원은 잘 마쳤고, 경력등을 이유로 가족의 귀국요청을 뒤로 하고 도시로 갔다. 돈이 너무 없었으나 벌기는 모두가 너무 힘든 2008년...지원해 보지 않은 업종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그런 험한 일을 못할 것 같아 보여서나, 외국인 이어서나, 나의 학벌이 높아서나, 그 도시안에서의 경력을 따지며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내 전공 분야에서도 그랬다. 공모전이며, 레지던시며, 시도치 않아본 기관이 없는것 같다.
과외등으로 전전 긍긍하다가 지친몸과 마음으로 한국에 귀국 하자마자 집은 부도로 정신이 없었다. 엄마가 모아놓은 돈까지 30년 일궈온 회사 살리겠다고 쏟아 부으신 아버지의 어깨는 더할 나위없이 위축되어 보였다.
많은 사기와 배신, 상실, 공권력등의 회오리는 온 가족의 혼을 쏙 빼놓았다.
가족간의 불화도 늘었다. 가정 속 경제(그것이 적거나 많거나)의 유지가 얼마나 서로의 정신적 안정에 영향을 미치는지 몸소 겪었다.
여러 이유와 죄책감에 완전 독립한 나는 30대가 되어야 돈이 없음을, 돈이 없는 공포를 처음 느꼈다. 늘 난 물질적 욕심이 많지 않으니 없이도 잘 지낼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했던 어린믿음은 현실에서 무너졌다.
삶의 그 모든 스탠다드를 내려야 했다. 그렇다고 그것이 다 잘 지켜지는건 아니여서 힘들고 같이 내려가는 자존감까지 붙드는게 힘들었다.
버릇과 익숙함들은 후회, 허탈, 허무감으로 돌아왔다.
있을때 먹는 칼국수는 순수히 즐기러 가는 거지만 없을때 가는 느낌은 또 다르다.
30대는 사회의 기대에서는 대리급, 과장급을 달고 저축을 하며 인생의 안정권으로 접어든다. 결혼도 하고 가정도 꾸리겠지.
난 통장의 잔고가 마이너스-제로-플러스를 한달에도 몇번을 왔다갔다 하는걸 본다.
랜트비가 몇십만인데 월세낼 시기에 통장에 단돈 몇 천원만 있을 때는 하늘이 샛노랗다.
그래도, 너무 힘들어도 사회가 원하는 30대, 가족이 원하는 30대의 길을 가지 않는 - 스스로 택한 길을 가는 나 로서는 부모에게 기댈 염치도 없고 형편상 그럴수도 없다.
여행과 사랑은 사치였고, 내 몸 하나 추스리고, 현기증을 불러 일으키는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어찌어찌 5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
그래, 지금껏 버티고 있는 나를 보면, 무엇이던 간에 어디로부턴가 큰 도움을 받고 있는 생각이 든다.
항상 한 문이 닫힐때 굶어 죽지말라고, 작업 포기 하지 말라고, 또 다른 한 문이 열렸다.
세상은 열정과 능력만이 밥먹여 주지 않는 다는건 어려서 부터 알고 있던 나로서는 더더욱 그런 기회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어머니 말이 맞다. 다들 내 나이때는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손자도 보여드린다.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난 참 이기적이다.
다 그만두고 취직을 해서 가족을 도울까 몇만번 고민했다. 난 장녀니까.
하지만 이뤄 온 모든걸 중단하기엔 그동안 너무 많은걸 걸었다. 시간, 돈, 열정, 내 청춘, 그리고 자아.
그렇게 예술을 하는것에 자부심을 갖고 앞으로만 나아가던 내게 처음으로 내가 해오던 모든것들이 내가 스스로 파놓은 무덤 같았다.
무덤이 맞다. 땅굴 같이 긴 무덤. 빛이 잘 들지 않는 무덤. 혼자 좋다고 십몇년을 파놓은 무덤.
돌아가는 길이 너무 어두워 감히 돌아가기가 너무 무섭다.
차라리 어디로 나올지 모르지만 계속 파고 가는게 낫다. 그게 내가 할수 있는 전부 이고 해왔던것들 아닌가. 무덤이 무덤이 아닌, 길이 되어 나 스스로를 인도 하는건 지극히 내 손에 달려있었다.
긴 어둠 속에서 어딘가의 밖으로 나와 빛을 보았을때, 거긴 어디일까? 누가 내 곁에 있을까? 난 그곳에 만족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이 과연.. 나에게 올까?
중학교때 원래 없던 사람이 갑자기 돈이 생기면 잘 적응 하는데, 원래 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돈이 없으면 적응하기 무척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난 그말을 참 오래 곱씹은 기억이 있다.
이해가 잘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이 있던 사람들의 욕심 때문이라 생각했고, 그런것은 마음먹기 달려 있다고 믿었었다. 인생에 물질적으로 꼭 필요한 것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꿈이 평범함이었다. 굴곡이 없는... 원래 없는 것도 싫고 많은것도 싫었다. 그때 부터 난 늘 돈이 있다 하더라도-그래봤자 용돈- 삶의 언젠가는 그것도 없을 수 있음을 인지 하고 살았던것 같다. 돈이란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잠시 머무는 존재들 아닌가.
부모님의 스타일이기도 했지만 내가 굳이 있는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살진 않았다.
그러나 커가면서 공부란 것을 하면서 너무 많은 것을 겪고 보고 배웠다. 이것들은 돈이 든다.
이 가치들을 계속 영위 하려고 해도 돈이 든다. 난 어느새 얻은것들을 유지 하고 싶어하는, 과거에 내가 생각한 '욕심장이'가 되어있던 것이었다.
나이 30대가 되어서 다시 꿈꾸어 본다.
10대 때 상상하던 그 평범함을.....
Sunday, January 11, 2015
상처
상처... 그건 내가 덮어주기엔 너무 큰 일이겠지?
완벽해 보이던 A씨는,
사실 두세겹도 아니고 한겹 들추어 보니, 성한 곳이 없는 멍과 상처 (Bruise) 투성이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 상처들의 출처들을 일일이 풀어주는 자상함은 보이지 않았다.
깊은 상처일수록 되새기는건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도움이 안될수 있으리라.
그러다 누군가 조금 가까이 다가가다가 자칫 옷깃이라도 상처에 스치면 그는 아주 날카롭게 반응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많이 아팠어요?" 라고 되묻고 싶지만 그의 상처를 더 자극할 수 있을까봐 내심 조심스럽다.
그는 그 멍과 상처들의 존재를 주술처럼 스스로 잊으려 한다.
그러다가 다가간 사람이 의도치 않게 스치기라도 하면 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가간 사람은 다시 그와 거리를 둔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건드린 이는 죄책감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더- 더-
거리를 두어야 하는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A씨를 돕는 방법은 그저 조용히 상처들을 아물기를 바라만 봐줘야 하는것인가?
A씨는 언젠가 누구에겐 그 상처들을 다 드러내고 치유를 위해 손을 내밀까?
A씨의 건승을 진심으로 빈다.
완벽해 보이던 A씨는,
사실 두세겹도 아니고 한겹 들추어 보니, 성한 곳이 없는 멍과 상처 (Bruise) 투성이의 사람이었다.
그는 그 상처들의 출처들을 일일이 풀어주는 자상함은 보이지 않았다.
깊은 상처일수록 되새기는건 상처를 아물게 하는데 도움이 안될수 있으리라.
그러다 누군가 조금 가까이 다가가다가 자칫 옷깃이라도 상처에 스치면 그는 아주 날카롭게 반응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프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많이 아팠어요?" 라고 되묻고 싶지만 그의 상처를 더 자극할 수 있을까봐 내심 조심스럽다.
그는 그 멍과 상처들의 존재를 주술처럼 스스로 잊으려 한다.
그러다가 다가간 사람이 의도치 않게 스치기라도 하면 또 민감하게 반응한다.
다가간 사람은 다시 그와 거리를 둔다.
의도치 않게 상처를 건드린 이는 죄책감에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더- 더-
거리를 두어야 하는게 아닌지 생각해 본다.
A씨를 돕는 방법은 그저 조용히 상처들을 아물기를 바라만 봐줘야 하는것인가?
A씨는 언젠가 누구에겐 그 상처들을 다 드러내고 치유를 위해 손을 내밀까?
A씨의 건승을 진심으로 빈다.
완벽한 그
꿈에서나 보았을까...
아니다
꿈에서도 본적이 없다.
내 주제를 알고 살자라는 나의 신념에 감히 그런 형상을 그려본적도 없는...
몇 종교에도 그렇지 않은가, 시각적으로 어떤 이미지로도 형상화를 금지하는...
나의 이상형의 남자는 그러하였다. 얼굴이 없는, 그러나 느낌은 충만한.
그래도 '기왕이면' 하는 리스트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어깨가 넓고, '기왕이면' 키도 나보다 크고, '기왕이면'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것들...
내면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겉에서 보여지는 일명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고 싶진 않았다.
그런면에서 몇번은 만나봐야 알수 있는 그 내면성은 어찌보면
빨리 쉽게 찾을수 있는 조건좋은 남자에 비해 난 눈이 무척 높은 것일 수 있다.
4년,
한국에 들어온지..
힘들고 지치고 외로운.. 적응을 하고 있나 하는 질문 조차 할수 없던 매정히도 빠른 세월들.
그리고 아직도 대답할수 없는 질문:
"나, 적응... 잘 하고 있는거지?"
그동안 한국에서 남자와의 인연에 별다른 노력을 안하고 살았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사랑은 감정적 사치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와 가치관, 인생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내가 '기왕이면'하고 바랬던 모.든.걸. 충족하는 남자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인정을 받는 것 같았고, 자신감도 넘치는 흠잡을 곳이 없는 남자였다.
누구라도 탐낼 그런 남자.
내가 못하는 특성을 그는 직업으로 삼고 있었고, 그가 잘하지 못하는건 내겐 직업이었다. 또한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알았으며, 예술을 이해 하였으며, 식습관 까지도 비슷했다.
그는 이보다 더 할수 없는 나에게 완.벽.한. 남자였다.
얼굴없던 나의 이상형에 그는 그렇게 갑자기 내인생에 들어와 퍼즐처럼 완벽하게 맞추어 주었다.
우린 아주 비슷했으며 아주 반대의 매력에 끌렸다.
그러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난 강가의 둥근 넙적한 돌이었고,
대리석의 반짝이는 예쁜 돌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가시돋은 돌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난 그의 가시에 찔렸고, 언젠가는 스스로가 만들어지는, 이미 내 모습을 사랑하는 자신의 돌의 모습이 아닌, 그의 가시로 찔리고 파여 그가 만들어놓은 돌의 모습이 될것 같았다.
그가 그의 가시로 나를 타지마할을 조각해 낸다한들,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이면 다 소용없는일 아닌가?
겁이 났다.
그의 사랑에도 의심을 하였고, 불안정이 내 숨을 조여 왔다.
몇년전 미국에서 유행하던 말, "He's just not that into you" 라는 말이 조롱하듯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문화적 다름... 이건 인정하기 싫지만 보고 겪고 말았다.
그를 통해 보게된 나는 미국적이였고, 그는 한국식 경쟁의 핏싸움에 얼룩진 남자였다.
그를 통해 본 나의 자존감.
또다른 방향과 방식으로 나를 배운다.
그 상처... 그건 내가 덮어주기엔 너무 큰 일이겠지?
불안은 독이다.
독에 취해 난 그렇게 그를 보내 버렸다.
아니다
꿈에서도 본적이 없다.
내 주제를 알고 살자라는 나의 신념에 감히 그런 형상을 그려본적도 없는...
몇 종교에도 그렇지 않은가, 시각적으로 어떤 이미지로도 형상화를 금지하는...
나의 이상형의 남자는 그러하였다. 얼굴이 없는, 그러나 느낌은 충만한.
그래도 '기왕이면' 하는 리스트가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어깨가 넓고, '기왕이면' 키도 나보다 크고, '기왕이면' 담배를 피우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것들...
내면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겉에서 보여지는 일명 '조건'에 맞는 사람을 찾고 싶진 않았다.
그런면에서 몇번은 만나봐야 알수 있는 그 내면성은 어찌보면
빨리 쉽게 찾을수 있는 조건좋은 남자에 비해 난 눈이 무척 높은 것일 수 있다.
4년,
한국에 들어온지..
힘들고 지치고 외로운.. 적응을 하고 있나 하는 질문 조차 할수 없던 매정히도 빠른 세월들.
그리고 아직도 대답할수 없는 질문:
"나, 적응... 잘 하고 있는거지?"
그동안 한국에서 남자와의 인연에 별다른 노력을 안하고 살았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사랑은 감정적 사치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와 가치관, 인생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내가 '기왕이면'하고 바랬던 모.든.걸. 충족하는 남자였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인정을 받는 것 같았고, 자신감도 넘치는 흠잡을 곳이 없는 남자였다.
누구라도 탐낼 그런 남자.
내가 못하는 특성을 그는 직업으로 삼고 있었고, 그가 잘하지 못하는건 내겐 직업이었다. 또한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알았으며, 예술을 이해 하였으며, 식습관 까지도 비슷했다.
그는 이보다 더 할수 없는 나에게 완.벽.한. 남자였다.
얼굴없던 나의 이상형에 그는 그렇게 갑자기 내인생에 들어와 퍼즐처럼 완벽하게 맞추어 주었다.
우린 아주 비슷했으며 아주 반대의 매력에 끌렸다.
그러나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난 강가의 둥근 넙적한 돌이었고,
대리석의 반짝이는 예쁜 돌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가시돋은 돌이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난 그의 가시에 찔렸고, 언젠가는 스스로가 만들어지는, 이미 내 모습을 사랑하는 자신의 돌의 모습이 아닌, 그의 가시로 찔리고 파여 그가 만들어놓은 돌의 모습이 될것 같았다.
그가 그의 가시로 나를 타지마할을 조각해 낸다한들,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이면 다 소용없는일 아닌가?
겁이 났다.
그의 사랑에도 의심을 하였고, 불안정이 내 숨을 조여 왔다.
몇년전 미국에서 유행하던 말, "He's just not that into you" 라는 말이 조롱하듯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문화적 다름... 이건 인정하기 싫지만 보고 겪고 말았다.
그를 통해 보게된 나는 미국적이였고, 그는 한국식 경쟁의 핏싸움에 얼룩진 남자였다.
그를 통해 본 나의 자존감.
또다른 방향과 방식으로 나를 배운다.
그 상처... 그건 내가 덮어주기엔 너무 큰 일이겠지?
불안은 독이다.
독에 취해 난 그렇게 그를 보내 버렸다.
Friday, January 9, 2015
캐나다 그 아득한 과거
캐나다라는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그저 아득한 과거속의 나라같다.
저녁 파티에서 내가 살던 오크빌과 내 학교를 알며 내 홈스테이 가족중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다니고, 그곳을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졸업해서 떠나자 마자 그 동내와 인연이 닿았다고 했다.
우린 한참 10년도 더 지난 서로의 캐나다 이야기를 했다.
묘하다...
난 그 좋은것만 생각하면 무한히 좋고, 싫은것만 생각하면 무한히 싫었던 그곳의 기억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캐나라라는 기억의 서랍장엔 전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폴더들이 너저분이 섞여 있다.
거기서 완벽한 폴더는 아마 토론토에서 만든것 이였을것 같다.
아쉽게도 그 폴더는 꺼내볼 일이 거의 없다. 그냥 완벽히 그곳에서 언젠가 꺼내어질때를 기다리며 앞으로도 꽤나 먼지가 쌓이겠지.
이상하다 기억과 감정이란게 정리 되지 않은 서랍장을 열 기회가 더 많다는건.
저녁 파티에서 내가 살던 오크빌과 내 학교를 알며 내 홈스테이 가족중 아들이 다니던 학교를 다니고, 그곳을 누구 보다 잘 아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졸업해서 떠나자 마자 그 동내와 인연이 닿았다고 했다.
우린 한참 10년도 더 지난 서로의 캐나다 이야기를 했다.
묘하다...
난 그 좋은것만 생각하면 무한히 좋고, 싫은것만 생각하면 무한히 싫었던 그곳의 기억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캐나라라는 기억의 서랍장엔 전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폴더들이 너저분이 섞여 있다.
거기서 완벽한 폴더는 아마 토론토에서 만든것 이였을것 같다.
아쉽게도 그 폴더는 꺼내볼 일이 거의 없다. 그냥 완벽히 그곳에서 언젠가 꺼내어질때를 기다리며 앞으로도 꽤나 먼지가 쌓이겠지.
이상하다 기억과 감정이란게 정리 되지 않은 서랍장을 열 기회가 더 많다는건.
Wednesday, April 13, 2011
우리말의 제 발견 - <쪼다>
10년간 외지 생활을 하면서 가끔 왜 이 이 단어가 이렇게 불리울까 하고,
태어나서 부터 써온 단어들에 의아해 한적이 좀 있다.
10년간 못되먹은 영어 욕은 있는것 다 배우고 왔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이 엄청난 욕이 상기 된 배경이 있지만, 그건 뒤로 하고,
이 아주 감칠맛 나면서 약간은 귀여운 맛이 있는 욕, <쪼다> 를 언급하고자 한다.
욕은 주로 우리에게 강도의 세기로 단위화 되어 사용된다.
그의 문화적 배경이나 음율의 느낌, 상황/상태의 적절성등은 많이 고려치 않고 사용한다.
우선 <쪼다> 라고 말해보자....
자신도 모르게 사랑스럽게 나오지 않는가?!
물론 당신은 비열하게 말을 했을수도 있다.
예를 들면 뭐, 쪼!다~! 이렇게... 그건 내가 전 긍정의 의미로 내비친것의 반항이거나 당신의 사회적 심리성을 의심해 볼것으로 여기겠다.
난 이 단어가 '사람이 무엇엔가 기가 죽어 쉽게 쫄다' 하는 의미의 욕으로 누군가 제 기를 다 펼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쓰는 말로, '바보'의 다른 말이라고 해석 했다.
그런데 여기서 '기가 쫄다'는 표준어처럼 쓸수 있나? 사투리 인가 욕인가??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뒤져보니,
쪼다 [명사]
‘덜떨어져서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을 낮추보아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 있다. 더 영어로 내가 silly 라고 해석을 했더라면 여기서는 retarded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조금 강도 높은 욕처럼 들린다!
더 쇼크한 것은 다음이다. 이 말의 배경인데, 이것이 왕! 의 이름.... 이 아니라 왕이 될뻔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
네이버인 들이 말하길...
"유래는 옛날에 '조다'라는 왕조가 있었는데
성함락 등등 아주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왕에 못오르고 죽어버려서
쪼다~쪼다 라고 부릅니다"
그사람 이런 빛나는 단어의 영구적 업적론은 누가 감히 언급할것인가.
성함락 등등은 관심 없다. 그는 우리에게 이 <쪼다>라는 단어를 주고 이세상을 떠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증명 하듯 말이다.
a
태어나서 부터 써온 단어들에 의아해 한적이 좀 있다.
10년간 못되먹은 영어 욕은 있는것 다 배우고 왔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이 엄청난 욕이 상기 된 배경이 있지만, 그건 뒤로 하고,
이 아주 감칠맛 나면서 약간은 귀여운 맛이 있는 욕, <쪼다> 를 언급하고자 한다.
욕은 주로 우리에게 강도의 세기로 단위화 되어 사용된다.
그의 문화적 배경이나 음율의 느낌, 상황/상태의 적절성등은 많이 고려치 않고 사용한다.
우선 <쪼다> 라고 말해보자....
자신도 모르게 사랑스럽게 나오지 않는가?!
물론 당신은 비열하게 말을 했을수도 있다.
예를 들면 뭐, 쪼!다~! 이렇게... 그건 내가 전 긍정의 의미로 내비친것의 반항이거나 당신의 사회적 심리성을 의심해 볼것으로 여기겠다.
난 이 단어가 '사람이 무엇엔가 기가 죽어 쉽게 쫄다' 하는 의미의 욕으로 누군가 제 기를 다 펼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쓰는 말로, '바보'의 다른 말이라고 해석 했다.
그런데 여기서 '기가 쫄다'는 표준어처럼 쓸수 있나? 사투리 인가 욕인가??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뒤져보니,
쪼다 [명사]
‘덜떨어져서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을 낮추보아 이르는 말
이라고 되어 있다. 더 영어로 내가 silly 라고 해석을 했더라면 여기서는 retarded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조금 강도 높은 욕처럼 들린다!
더 쇼크한 것은 다음이다. 이 말의 배경인데, 이것이 왕! 의 이름.... 이 아니라 왕이 될뻔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
네이버인 들이 말하길...
"유래는 옛날에 '조다'라는 왕조가 있었는데
성함락 등등 아주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왕에 못오르고 죽어버려서
쪼다~쪼다 라고 부릅니다"
그사람 이런 빛나는 단어의 영구적 업적론은 누가 감히 언급할것인가.
성함락 등등은 관심 없다. 그는 우리에게 이 <쪼다>라는 단어를 주고 이세상을 떠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증명 하듯 말이다.
a
Monday, April 11, 2011
가깝지만 먼 존재들
우리 삶엔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존재들이 있다.
가까이 있는 일본, 혹은 동남아 나라들도 지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그들의 문화나 사회적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거리감이 있다.
사람사이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지만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에 따라 우린 멀리 느끼기도 하고 가깝게 느끼기도 한다.
멀리에서 사는 남자들만 만난 나는 반대로 그들이 가깝게 느껴진 한 예다.
늘 서로 생각하고, 늘 전화/통신에 의존한 교류 만으로도 존재적 가치와 부피는 누구와도 견줄수 없이 커 멀리 사는 그들이 멀지 않게 느껴 졌었다.
주로... 이건 초반에 더욱 해당하는 말이 겠고...
그런 교류가 쌓인다는 것은 애정도 같이 쌓아 진다는 뜻이다. 애정이 쌓아 질수록
상대방에 기대하는 바들이 커지거나 방향을 달리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엔 언젠가 트러블이 생긴다.
트러블이 쌓이고 쌓여 지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것도 물론... 늘 애정을 나누던 전화상으로...
사랑은 결국 '지침' exhaustion 에 지는 것인가? 그 지침 안에서도 난 아직 애정이 있다고 믿는다.
지침에 의한 헤어짐은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힘든 무게를 내려 놓는 거.
그렇게 나온 헤어짐은 서로를 오랫동안 힘들게 한다.
그 지침은 강한 애정에서 온다.
먼거리에서 하는 연예야, 늘 혼자 하던거 하고 내 삶을 살고 있다가 가끔 만나면 사랑의 추억을 만들고, 또 다시 만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싱글 이었을때나, 멀리 사는 님들과 관계를 이어가도 내 궁극적 삶의 모습은 많이 변하지 않는다.
전화만 많이 할뿐...
만약 적당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나는 관계 였다면, 없는 것보다야 전화상의 관계에 만족을 했을터이고, 어쩌다 만나는것에도 만족을 했을터이다. 내 일상의 삶엔 큰 변화가 오지 않으니 말이다. 문제는 자꾸 쌓여가는, 만들어지는 애정의 크기에서 드리워지는 야속함이다.
더 가까이 두고 싶고, 더 자주 보고 싶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연예만으로 20대를 다 보냈다.
익숙해 져야 하는 걸까? 인생의 숙명인가?
남들이 말하는 현실적 사랑은 무엇인가?
순간 지쳐 있는 스스로를 보고 왠지 안타깝다.
이 나이에 정상적인, 남들같은 연예는 어떻게 하는지 감 도 오지 않는다.
나의 이기심과 욕심들로 그들을 멀리 보내야 했다.
그들은 멀리 있다.
그러나 같이 해온 추억들로도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가까이 있는 일본, 혹은 동남아 나라들도 지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그들의 문화나 사회적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거리감이 있다.
사람사이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지만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에 따라 우린 멀리 느끼기도 하고 가깝게 느끼기도 한다.
멀리에서 사는 남자들만 만난 나는 반대로 그들이 가깝게 느껴진 한 예다.
늘 서로 생각하고, 늘 전화/통신에 의존한 교류 만으로도 존재적 가치와 부피는 누구와도 견줄수 없이 커 멀리 사는 그들이 멀지 않게 느껴 졌었다.
주로... 이건 초반에 더욱 해당하는 말이 겠고...
그런 교류가 쌓인다는 것은 애정도 같이 쌓아 진다는 뜻이다. 애정이 쌓아 질수록
상대방에 기대하는 바들이 커지거나 방향을 달리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엔 언젠가 트러블이 생긴다.
트러블이 쌓이고 쌓여 지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것도 물론... 늘 애정을 나누던 전화상으로...
사랑은 결국 '지침' exhaustion 에 지는 것인가? 그 지침 안에서도 난 아직 애정이 있다고 믿는다.
지침에 의한 헤어짐은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힘든 무게를 내려 놓는 거.
그렇게 나온 헤어짐은 서로를 오랫동안 힘들게 한다.
그 지침은 강한 애정에서 온다.
먼거리에서 하는 연예야, 늘 혼자 하던거 하고 내 삶을 살고 있다가 가끔 만나면 사랑의 추억을 만들고, 또 다시 만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싱글 이었을때나, 멀리 사는 님들과 관계를 이어가도 내 궁극적 삶의 모습은 많이 변하지 않는다.
전화만 많이 할뿐...
만약 적당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나는 관계 였다면, 없는 것보다야 전화상의 관계에 만족을 했을터이고, 어쩌다 만나는것에도 만족을 했을터이다. 내 일상의 삶엔 큰 변화가 오지 않으니 말이다. 문제는 자꾸 쌓여가는, 만들어지는 애정의 크기에서 드리워지는 야속함이다.
더 가까이 두고 싶고, 더 자주 보고 싶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연예만으로 20대를 다 보냈다.
익숙해 져야 하는 걸까? 인생의 숙명인가?
남들이 말하는 현실적 사랑은 무엇인가?
순간 지쳐 있는 스스로를 보고 왠지 안타깝다.
이 나이에 정상적인, 남들같은 연예는 어떻게 하는지 감 도 오지 않는다.
나의 이기심과 욕심들로 그들을 멀리 보내야 했다.
그들은 멀리 있다.
그러나 같이 해온 추억들로도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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