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나게 된 유학길.
다행이도, 아버지 친구 딸 도 준비중에 있었기에 우리 부모님도 같이 보내기로 결정, 그쪽 어머니와 딸, 나와 울 어머니와 각각 딸들짐만 4개씩 보따리 싸와 그 친구 어머니의 친구집에 몇일 묵으며 동내 한인 교차로를 뒤지며 내가 나갈집을 찾았다.
그때, 반지하 (대부분의 북미쪽 집은 반지하도 윗방 다르지 않게 좋다.) 에서 작은 방에서 엄마와 나 둘이 잤는데, 엄마가 아침에 일어나서 옛 친정에서 들리던 멀리서 들려오는 기차 소리가 좋았다고 했다. 나도 들었고, 아침에 들리는데, 꽤 로맨틱 했었다.
헌데 나중에 정말 몇~년이 흐르고 알았지만 그 소리는 한국에선 들을수 없었던 레디에이터(히터)의 김새는 소리였다!
엄만 내가 먹는것 때문에 걱정이 되서 한인을 원하셨다.
난 지내는것은 아무 생각이 없었던거 같다.
어느 아주머니 집에 들어갔다. 혼자 딸 둘을 데리고 하숙을 목적으로 큰집에 사시는 분이었다.
엄만 이리 저리 구경하고, 이집을 하자고 하셔, 그러자고 하고, 난 힘든 캐나다 적응 생활을 시작했다.
엄만 그리고 4일후 우시며 한국으로 들어가셨다.
난 독하다. 그런거 같다. 미국 나이로 17살에 영어도 지질이 못하던 난, 모르는게 용감하다는 말을 실감하듯 눈물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공항에서도, 엄마가 캐나다를 떠날때도.
막 시작된 새 인생에 너무 벅차 있었던 걸까?
나이는 바로 고등학교를 들어가야할 나이였지만, 언어 때문에 그 아빠친구딸과 난 영어 연수 기관에 들어갔다.
그곳은 그때 나에게 "해븐" 이었다.
처음 만난 자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대학교 들어간 학생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영어 지질이 못해 역시 1급 수업 (8급 까지 수준이 나뉘어져 있었다.) 부터 듣기 시작 했다.
다음...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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