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날 두고 가신 곳은 다크서클 많이 져 있는 싱글 아줌마 집이었다.
밥은 이야기 한것과 다르게, 마른반찬 몇개만 나오고, 눈치를 밥 한공기 가득 보다 더 주시는 그런 분이 셨다.
그곳에는 나 말고 곧 다른 언니 오빠 들이 들어왔는데, 나보다 조금 나이 더 있는 자매가 라면 하나 끓이기 위해, 아줌마 있나 없나 여부와 그의 딸의 존재까지 파악후 007 작전으로 라면 끓어 먹던게 생각이 난다. 워낙 눈치주던 사람들이었지만 그 자매는 더욱 그것을 주시 했다.
난 그곳에서 한달 있은후, 나가기로 결정, 아줌마에게 한달 더 낸 랜트비 반납을 요구 했다.
그것은 디파짓으로 그때 나는 그게 뭔 개념인지도 몰랐다.
아줌마는 너가 들어올때, 첫달 랜트랑 마지막달 랜트를 디파짓으로 낸것이니, 한달을 더 있어야 하거나 포기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후 나의 눈치밥은 두 그릇이었다.
가끔 두 딸들이 우리 하숙생을 방에 들어와 살살 눈치보며 이것저것 보고 만지고 물어보고
눈치 준일들이 생각난다.
세상 공부밖에 모르던 난, 우리나라에 흔히 존재 한다는 (이 사실도 나중에 배운) 그 눈칫밥을 적날하게 먹어봤다.
토론토 에서, 아는 것도 없고, 그냥 다운타운 이튼 몰에 어쩌다 가보겠다고 좀 깨끗하게 입고 나오면 머리 위부터 발끝까지 훝어보시며, "어디..가니..?" 라고 전기세 아끼신다고 어두껌껌한 주방에서 그 다크 서클한 눈으로 날 쳐다보시며 물어보신게 생각이 난다.
그곳에서 옆방 컴퓨터 잘하는 오빠 (좀 젊은 아저씨였다 그때 나에겐) 한테 처음 사서 처음 써보는 컴퓨터 노트북 에 대해 많이 배웠던 것도 생각난다. 나중에 그렇게 홀로 외로워 하던 오빤 어쩌다 내가 캐나다 학교 졸업하고 한국 들어가는 공항에서 오빠의 임신한 부인과 함께마주쳤다.
사운드를 중요시 하던 오빠는 그 작은 방 곳곳 사방 팔방에 스피커를 설치 해, 영화 한편을 보여주었는데, 그 영향은 나로 하여금 좋은 스피커 없이 본 영화는 본것 같지도 않게 만들어 버렸다. 나중에 유학 하면서 스피커가 쌍으로 2개, 총 4개 있었다.
그렇게 조치 않았던 한인 아줌마와의 하숙 인연은 2개월로 마감했지만 너무도 길고긴 2달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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