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6개월 정도의 영어 연수 기간 동안 좋다는
캐나다 고등학교 몇군데를 알아보았다.
이런... SSAT라는 영어 시험점수가 있어야 받아주는 학교 들이었다.
공부했다. 그러나 기본 회화에서 쩔쩔매는 내가 쬠 공부했다고 좋은 성적을 받을리 없다.
얼토당토않는 점수 가지고, 그래도 자기들이 주는 시험 패스 하면 받아주겠다는 학교를 방문,
학교도 구경하고 시험들도 봤다.
첨에 학교 정보 구할때 받은 카달로그를 본 첫 느낌은 정말 잊을수가 없다.
고등학교 카달로그라...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한 너무 예쁘게 만들어진, 펴는 페이지마다 영화에나 나올퍽한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는 고등학생들은 거의 픽션에 가까웠고, 내가 기대하던 고등교육 과 상상도 할수 없던 그 무엇이었던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떠날 당시만 해도 그 유치한 세일러문이 유행이었다. 개나 소나 그 노래를 따라 부를줄 알았엇다. 난 그 카달로그의 고딩들이 진심으로 세일러문으로 보였다.
그리고, 침을 흘리며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되어 같은 옷을 입고 같이 공부를 한다는 상상을 했다. 학교마다 있는 카달로그를 보고 또 보며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쳤던 것이다!
.
.
.
.
.
많은 학교에서 SSAT 점수 때문에 거절 당할때 까지.... ㅡㅡ;
난 공부를 잘 해서 유학간게 아니었고, 공부를 못해서 간것은 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 일주, 일년 삼분의 이를 미술 실기를 하면서 한 공부는 보통 고딩들의 수준 이하였을것이라 으레 짐작한다.
그럼 왜 유학을 가게 됬냐고?
집에서 가라고 해서?
집에선 처음에 완강히 반대 하셨다. 그들은 상상도 못할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제안 이었을 것이다. 난 그들이 반대 할수 없도록 이유와 기대 결과, 목표들을 정확히 작성해 부탁 드렸다.
결과는 역시 그들은 반대 할수 없었었다.
난 그냥.. 가야 한다는, 내가 가야만 더 발전할수 있다는, 그 뭔가 모자란 듯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활발한 나도 아니었고, 공부도 그냥 그랬지만 새로운 그 무언가 를 배운다는 것을 난 미치도록 원했고, 할수 있다고 너무 당연히 믿어졌다. 머리 는 좋지 않은게 열정만 철철 넘친 미숙아 였던것이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는가, 무식하면 용감 하다고...
2009년 올해 개봉한 영화 "국가대표" 라는 영화에서도 선수중 조금 모자란 동생이 형이 하는걸 보고, 자신이 롤러코스터 트랙에 스키 점프 연습대를 설치 한다.
그리고 겁없이 뛰어든다.
그 옛날 10년 전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ㅡㅡ
영어를 못해도 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속은 많이 상했었다.)
많이 안배워서 그러니까, 그럼 많이 배우면 되는것이었으니까.
.
.
.
.
그러나 6개월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도, 언어의 벽은 꽤나 높았다.
그러나 6개월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도, 언어의 벽은 꽤나 높았다.
반응은 좋았다. 누가 한국에서 배운 테크닉 적인 작품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있는가.
로봇처럼 배웠는데.
그렇게 난 촌구석에 나무와 좋은공기, 좋은 집들로 둘러싸인 작은 여학교 에 입학했다.
.
.
.
.
.
.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