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3, 2011

우리말의 제 발견 - <쪼다>

10년간 외지 생활을 하면서 가끔 왜 이 이 단어가 이렇게 불리울까 하고,
태어나서 부터 써온 단어들에 의아해 한적이 좀 있다.

10년간 못되먹은 영어 욕은 있는것 다 배우고 왔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이 엄청난 욕이 상기 된 배경이 있지만, 그건 뒤로 하고,
이 아주 감칠맛 나면서 약간은 귀여운 맛이 있는  욕, <쪼다> 를 언급하고자 한다.

욕은 주로 우리에게 강도의 세기로 단위화 되어 사용된다.
그의 문화적 배경이나 음율의 느낌, 상황/상태의 적절성등은 많이 고려치 않고 사용한다.

우선 <쪼다> 라고 말해보자....
자신도 모르게 사랑스럽게 나오지 않는가?!
물론 당신은 비열하게 말을 했을수도 있다.
예를 들면 뭐, 쪼!다~! 이렇게... 그건 내가 전 긍정의 의미로 내비친것의 반항이거나 당신의 사회적 심리성을 의심해 볼것으로 여기겠다.

난 이 단어가 '사람이 무엇엔가 기가 죽어 쉽게 쫄다' 하는 의미의 욕으로 누군가 제 기를 다 펼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쓰는 말로, '바보'의 다른 말이라고 해석 했다.
그런데 여기서 '기가 쫄다'는 표준어처럼 쓸수 있나? 사투리 인가 욕인가?? 그건 내 관심사가 아니다.
그래서 뒤져보니,
쪼다 [명사]

‘덜떨어져서 제구실을 못하는 사람’을 낮추보아 이르는


이라고 되어 있다. 더 영어로 내가 silly 라고 해석을 했더라면 여기서는 retarded 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조금 강도 높은 욕처럼 들린다!
더 쇼크한 것은 다음이다.  이 말의 배경인데, 이것이 왕! 의 이름.... 이 아니라 왕이 될뻔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것.
네이버인 들이 말하길...

"유래는 옛날에 '조다'라는 왕조가 있었는데



성함락 등등 아주 큰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왕에 못오르고 죽어버려서
쪼다~쪼다 라고 부릅니다"

 그사람 이런 빛나는 단어의 영구적 업적론은 누가 감히 언급할것인가.
성함락 등등은 관심 없다. 그는 우리에게 이 <쪼다>라는 단어를 주고 이세상을 떠났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을 증명 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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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April 11, 2011

가깝지만 먼 존재들

우리 삶엔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존재들이 있다.


가까이 있는 일본, 혹은 동남아 나라들도 지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그들의 문화나 사회적 경험의 부재에서 오는 거리감이 있다.



사람사이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가 있지만 마음의 문을 여는 정도에 따라 우린 멀리 느끼기도 하고 가깝게 느끼기도 한다.



멀리에서 사는 남자들만 만난 나는 반대로 그들이 가깝게 느껴진 한 예다.

늘 서로 생각하고, 늘 전화/통신에 의존한 교류 만으로도 존재적 가치와 부피는 누구와도 견줄수 없이 커 멀리 사는 그들이 멀지 않게 느껴 졌었다.



주로... 이건 초반에 더욱 해당하는 말이 겠고...

그런 교류가 쌓인다는 것은 애정도 같이 쌓아 진다는 뜻이다. 애정이 쌓아 질수록

상대방에 기대하는 바들이 커지거나 방향을 달리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엔 언젠가 트러블이 생긴다.



트러블이 쌓이고 쌓여 지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것도 물론... 늘 애정을 나누던 전화상으로...



사랑은 결국 '지침' exhaustion 에 지는 것인가? 그 지침 안에서도 난 아직 애정이 있다고 믿는다.

지침에 의한 헤어짐은 애정이 식어서가 아니라 힘든 무게를 내려 놓는 거.

그렇게 나온 헤어짐은 서로를 오랫동안 힘들게 한다.



그 지침은 강한 애정에서 온다.

먼거리에서 하는 연예야, 늘 혼자 하던거 하고 내 삶을 살고 있다가 가끔 만나면 사랑의 추억을 만들고, 또 다시 만날을 기약하며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한마디로 싱글 이었을때나, 멀리 사는 님들과 관계를 이어가도 내 궁극적 삶의 모습은 많이 변하지 않는다.

전화만 많이 할뿐...

만약 적당히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만나는 관계 였다면, 없는 것보다야 전화상의 관계에 만족을 했을터이고, 어쩌다 만나는것에도 만족을 했을터이다. 내 일상의 삶엔 큰 변화가 오지 않으니 말이다. 문제는 자꾸 쌓여가는, 만들어지는 애정의 크기에서 드리워지는 야속함이다.



더 가까이 두고 싶고, 더 자주 보고 싶고,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어한다.



이런 연예만으로 20대를 다 보냈다.

익숙해 져야 하는 걸까?  인생의 숙명인가?

남들이 말하는 현실적 사랑은 무엇인가?



순간 지쳐 있는 스스로를 보고 왠지 안타깝다.

이 나이에 정상적인, 남들같은 연예는 어떻게 하는지 감 도 오지 않는다.




나의 이기심과 욕심들로 그들을 멀리 보내야 했다.





그들은 멀리 있다.

그러나 같이 해온 추억들로도 그들이 가깝게 느껴지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