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29, 2016

수트

그는 걷고 있다.

마치 영화의 슬로우모션처럼 그는 그렇게 천천히 걷는다.
나의 귀는 그의 잘 닦여진 구두가 만들어 내는 또각 또각 소리에 집중한다.

세상이란 무대엔 그 혼자이고, 그를 중심으로 둔 배경은 모두 하얗다.

검은 양복, 아주 매트한 그의 수트는 손목에 하얀 셔츠의 소매를 적당히 내밀고 있다.
짧게 깎아 올린 그의 머리끝 목선을 따라 단호히 존재감들 드러내는 하얀 카라.


그의 힙을 살짝 가린듯한 두 갈래로 나누어진 잉글리쉬 컷은 그의 구두소리와 같은 리듬으로 펄럭 거린다.

일자로 뻗은 강한 라인의 바지선은 그가 한 걸음 내 딛을때마다 그의 넓은 허벅지 라인을 보일듯 말듯 드러내고, 아래 바짓단은 적당히 춤을 춘다.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가던 그는 이미 무대를 벗어나고
아, 그 아름다움에 빠져 얼굴은 보지 못 했구나...

그래도 괜찮다.
이미 그의 수트가 그에 대해 다 말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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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요즘 을지로와 여의도에 일을 다니며 퇴근시간의 양복입은 남자들을 많이 접한다.
미국남자들에 비해 난 한국 남자들이 수트를 잘 입는다고 생각한다.
가끔 내 혼이 빠질 만큼. 넋이 나가 도록 바라본다.
수트는 진정 인간사에 가장 아름다운 발명이라 말하고 싶다.



Thursday, April 28, 2016

소음

우리 건물엔 젊고 잘생긴 남자 가수가 산다.
그는 한때 자기방에서 늦은 밤부터 새벽 까지 쉬지 않고 열창을 하곤 했다.
대각선으로 윗층사는 나에게 가사 까지 들릴 정도로 아니, 건물 밖에서도 들릴 정도 였다.
예술 종사자 인가 싶어 참다가 연속최대 5시간 연습, 무직에 아침 점심 저녁 을 가리지 않기 시작했다.
하루는 그가 볼수 있도록 엘레베이터에 노트를 붙였다.
90년대의 좋은 곡으로 늦은 밤까지 노래 자랑 잘 들었다고, 다음엔 경찰과 듣겠다고 썼다. (그는 오직 한 노래만 불렀다.)
몇시간 후 나가보니 노트는 없어졌고 밤에 노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달후 그는 남들이 꿈나라에서 절대 깰수 없는, 그러나 내겐 취침 시간인 새벽 4부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야망은 진심 높이 살만 하다.

전에 살던 곳엔 허접한 방음으로 그의 화장실 주기 까지 알수 있을 퍽한 거리의 옆방에 뮤지컬배우가 살았다. 역시 남자였다.
그도 방에서 열창을 했더 랬다. 그는 그래도 밤 10-11사이에만 했다. 그도 같은 노래를 반복적으로 했고 난 그때마다 음악 볼륨을 높여야 했다.
한번은 가사가 들리길래 그대로 인터넷에 처보니 어떤 뮤지컬 음악이었다. 그래서 그가 뮤지컬 오디션 준비생임을 알았다. 
그러나 아래층 주민이 컴플래인 한 이후로 조용해 졌다.
엄마는 그들이 연습실도 없다면 집에서 혼자 연습할 수 도 없고 불쌍하다고 했다.  

그러나 난 잠 좀 자야겠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