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30, 2015

김밥

난 김밥을 먹고 세번 운 기억이 있다. 


01 김밥

향수병에 타지에서 무조건 열심히 살아야 함을 내 몸의 세포조차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다가,
맛없는 홈스테이 엄마의 음식을 불평할 겨를도 없었을때...

지금은 사라진 OAC (13학년) 마지막 고등학교 해에 조금이라도 수학 점수를 잘 받아 보고자 오크빌에서 기차를 타고 토론토의 University of Toronto 에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분에게 찾아가 과외도 받으러 다녔었다.

그 촌구석 오크빌은 한국음식은 커녕 아시안이 정말 없는 곳이여서 과외 장소인 U of T의 카페테이리아에서 김밥(일본식) 도시락을 보고 너무 반가워 그걸 하나 사서 부푼마음으로 첫 방문 후 돌아오는 기차에 올랐다.   조심스레 흔들리는 기차에서 난 더 조심스레 케이스를 열었고, 일본 간장을 찍은 김밥을 먹는 순간 잊고 있던 밥, 간장의 향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한참을 울며 누가 볼까봐 창쪽으로 얼굴을 돌린체 먹었던 기억이 난다.



02 김밥

고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동안 한국을 찾은 나는 인천 공항에서 청주 그리고 하룻밤만에 이미 부모님이 위치만 알아 놓으신 서울의 고시원에 들어갔다.
이미 가구가 있고, 두어달만 있는 공간이고 서울을 잘 몰랐던 부모님은 비싼 돈을 내니 고시원도 살만한 곳이라 여겼나 보다. 난 빼곡히 들어서 있는 어두운 복도의 문들을 기억한다.

방을 보는 순간 내가... 고향에까지 와서 이런곳에서 지내게 되는구나.. 하고 나오는 눈물을 꾸욱 참았지만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것 까지는 참지를 못했다. 주제가 김밥이니 고시원의 상황을 자세히 열거 하지 않겠다. 나름 역삼동의 비싼 곳이었고, 다니려던 학원과 가까웠던것은(것만) 좋았다.

방은 정말... 정말... 작았다. 3평? 차라리 감옥이 나았을 것이라 진심으로 느꼈다.
혼자 짐을 풀고 멍하니 그 불편한 공간에 있다가 저녁시간이 되버린걸 알았다. 아 꿈에 그리던 한국에 왔는데, 그 많은 메뉴중 무얼 먹어야 하나...

한국은 혼자 먹는 사람을 뻘쭘하게 만드는 문화가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덜 하지만)
그렇게 먹고 싶었던게 많았는데, 난 김밥이 떠올랐다. 너무 먹고 싶던 한국식 김밥...
난 혼자 김밥을 무덤덤하게 아니 조금은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켰다.

김밥이 왔고 입에 넣는 순간 정말- 정말 기대치 않게 미친듯이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목이 너무 메어 물었던 것을 바로 뺐을정도로... 눈물 콧물 다 나오고 주체가 되지 않은데, 조용했던 식당 아줌마들도 신경이 안 쓰였다. 난 그것들을 삼킬때마다 목이 너무 메여왔지만 결국엔 다 먹었다.
다 먹어야 했다.
이때의 김밥은 그렇게 외롭고 힘든 생활을 하고 오랜만에 온 한국에... 집에서 하룻밤만에 다시 새로운 도시에 와, 혼자 좋아 하는 음식, 그 별거 아닌 음식을 혼자 먹은 서러움과 복받침이었을 것이다. 뭐 먹으면서 제일 많이 울었던 날이었던 것 같다.



03 김밥

지갑이 두둑할때 먹는 김밥은 맛있었다. 원할때 사먹으니까...
지갑에 돈이 없어서 먹는 김밥은 맛이 없었다. 돈없어서 사먹으니까...

집이 부도 나고 전공 살리려고 고군 분투 하며 스튜디오에서 전시 준비랍 시고 새벽 4-5시 까지 작업을 하면 저녁을 6시에 먹은 나는 너무 허기가 져 집에 돌아오던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때 우리집이 경매로 넘어가기 전... 우리 옆 건물의 일층은 24시 김밥집 이었다. 배가 고파 지갑을 보니 거진 1500 나온것 같다...
그 돈이면 기본 야체김밥을 먹을 수 있다. 난 아주머니가 호일로 길게 싸준 김밥을 통째로 들고 호일을 위 부터 까먹먹으며 집으로 올라왔다.

늘 먹던 김밥인데 맛이 없다. 내 자신이 너무 초라 했다.
집은 일명 망했는데, 무슨 부귀를 누리겠다고, 무슨 이기주의로 작업을 하나... 부모님께 죄송하고 이제 인생이 이 24시 김밥 같아 지겠구나 하며 지금과는 너무 다른 앞으로의 삶이 펼쳐지며 집 들어가기 전 문 앞에서 울다 들어 갔다.  그때의 김밥은 반 이상 남겼다... 그 이후로도 난 그 어딜가나 '맛 없는' 김밥을 먹는 일이 잦아 졌다.


몇달 뒤면 한국을 떠난게 벌써 15년 전이 된다. 강물보다 빠른 듯 한 요즘의 시간은 이미 날 한국에서의 5년이라는 사실을 믿기 어렵게 한다.

10년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 반 토막 기간인 한국에서의 (곧)5년도...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사이 김밥은...고급화 되어 맛있어 졌다...

이젠 눈물과 먹는 김밥...
그만 하자.

안그래도 김밥은 원레 목이 메이는 음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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